1. 드라마 줄거리 요약
억울한 사람은 많다. 그러나 억울함을 입증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SBS 드라마 <피고인>은 ‘기억을 잃은 검사’라는 강력한 서사를 중심에 둔 작품이다. 주인공은 모범적인 검사였던 박정우(지성).
그는 어느 날 눈을 떠보니 감옥 안에 있고, 자신의 아내가 살해된 사건의 피고인으로 지목돼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본인은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점이다. 자신이 왜 수감되었는지조차 모르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정우는, 점차 기억의 조각을 되찾으며 자신이 누명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후 드라마는 정우가 진실을 밝혀나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법과 정의라는 무기 대신 망가진 기억과 남겨진 의심을 들고 싸워야 하는 이 인물은, 단순한 복수의 화신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과 존재의 진실을 되찾기 위한 치열한 투쟁의 상징이 된다. 기억이라는 이름의 미로, 그 안에 갇힌 한 남자가 걸어 나오는 18부의 여정. <피고인>은 그렇게 탄생한다.
2. 드라마의 디테일/예술적인 포인트
<피고인>은 자극적인 설정에 기댄 법정극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정제된 감정선과 치밀한 서사 구조로 승부하는 작품이다. 특히 1회부터 5회까지 이어지는 ‘기억 상실’ 파트는 빠른 전개와 혼란스러운 시점 구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시청자의 몰입을 극대화한다.
회차가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사건의 진실은 단순히 ‘반전’ 이상의 울림을 전한다. 정우의 감정 변화는 극적으로 폭발하지 않지만, 그 절제 속에서 느껴지는 인간적 고통은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지성의 눈빛 하나, 숨소리 하나가 거대한 감정의 결을 전달한다.
연출 측면에서도 박진우 감독은 과도한 음악이나 화면 전환 없이, 밀도 높은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집중한다. 특히 정우가 감옥 안에서 겪는 심리적 변화, 점차 각성해가는 감정의 동선을 따라가는 연출은 정적이지만 묵직하다. 무고한 자의 무너짐과 회복, 그 내면의 파동을 따라가는 카메라는, 드라마를 단순한 범죄극이 아닌 심리 드라마로 승화시킨다.
3. 감독과 출연 배우 설명
연출을 맡은 박진우 감독은 이전에도 <청담동 스캔들>, <내 마음 반짝반짝> 등 인물 중심의 감정 드라마에 강점을 보여준 바 있다. <피고인>에서는 그 특유의 밀도 있는 인물 묘사와 감정의 축적을 극대화하면서도, 장르적 긴장감까지 효과적으로 결합했다.
지성은 주인공 박정우 역을 맡아, 기억을 잃은 검사에서 진실을 좇는 피고인으로의 극적 전환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그는 단순히 억울함에 분노하는 남자가 아니라, 무너진 자아를 복원해가는 고통과 두려움, 희망과 회복을 동시에 보여준다.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지성의 얼굴’이 아니라 ‘정우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몰입감이 압도적이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엄기준은 ‘차선호’와 ‘차민호’라는 일란성 쌍둥이 캐릭터를 1인 2역으로 소화한다. 특히 싸이코패스 재벌 2세 차민호 캐릭터는 기존 드라마 악역들과는 결이 다른 섬뜩함을 보여준다. 과도한 광기나 외형적 연출 없이, 냉소적인 눈빛과 일그러진 논리로 압박해오는 그는 이 드라마의 서사를 더욱 팽팽하게 끌고 간다.
이외에도 권유리, 오창석, 김민석, 신린아 등 탄탄한 조연진이 제 역할을 해내며, 각 캐릭터가 단지 극의 기능이 아닌 감정의 축을 이루는 존재로서 살아 숨 쉬게 만든다.
4. 총평
<피고인>은 법정극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본질은 인간 내면의 서사에 훨씬 가깝다. 진실을 향한 갈망, 기억을 되찾는 고통, 그리고 그 안에서 흔들리는 한 인간의 이야기. 그 긴 여정은 우리에게 진실이라는 것이 단지 팩트의 나열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이 어우러진 존재의 핵심임을 깨닫게 한다.
드라마는 단순한 복수극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오히려 감옥이라는 가장 폐쇄된 공간에서 출발하여, 점차 마음의 문이 열리고, 인간이 인간을 회복해가는 서사로 확장된다. 그 안에는 가족을 향한 미안함, 딸을 그리워하는 절절함, 정의를 다시 세우고 싶은 간절함이 공존한다.
<피고인>이 방영되던 2017년,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28.3%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고, ‘지성의 인생 연기’라는 평가를 얻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지 시청률로만 평가되기 어려운 밀도와 깊이를 지닌다.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 만나는 <피고인>은 단순한 재시청이 아닌, 다시 묻는 질문처럼 다가온다. 진실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끝까지 기억할 수 있는가. 이 드라마는 그 물음 앞에서, 어떤 대답보다 더 깊은 침묵을 남긴다.